'명량해전'을 1척 vs 133척의 전투라고 봐야하는 이유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이 적을 막아서면 전투를 진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난중일기>와 조선왕조실록, 징비록에 기록되어 있는 명량해전을 1 vs 133의 전투라고 봐야하는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징비록의 기록에 의하면 명량해전 진행 초기 이순신 장군이 탑승한 대장선이 적선의 이동로를 막아서며 전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은 울둘목의 소용돌이를 이용하여 왜선을 하나 둘 씩 격침시키기 시작했는데요. 또한 판옥선은 선체 자체가 워낙 튼튼하게 제작되었기 때문에 지형을 이용하여 왜선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징비록에 의하면 명량해전 당시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11척의 판옥선은 뒤에서 대장선의 전투만 지켜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투 도중 대장선이 위험에 처하자 판옥선 한 척이 대장선을 구하러 갔고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나머지 판옥선들도 전투에 참가하게 되는데요.
또한 전투 도중 왜군 장수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대장선을 격파하고 나머지 왜선들까지 박살내면서 전투를 이어갔다고 하는데요.
결국 일본 수군은 일본 수군의 피해가 크다고 판단하고 후퇴를 결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은 '명량해전'에서의 패배 이후 다시 조선 수군에게 남해안 재해권을 뺴앗기게 되는데요.
징비록, 난중일기,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명량해전 전투 진행 초기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은 일본 수군의 앞을 가로 막으며 오랜 시간 동안 전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즉, 조선군에게 유리한 형세가 되자 나머지 판옥선 11척이 전투에 참여했다는 것인데요. 명량에서 조선 수군에게 박살난 일본 수군의 기세를 꺽어버린 것은 1척의 조선 수군의 대장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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