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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건국의 아버지 '마오쩌둥'이 독재자로 평가받은 결정적인 사건

똥베이런 2017.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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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오쩌둥'은 아직도 중국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마오쩌둥'을 지독한 독재자라고 평가한다고 하는데요. 중국 건국의 아버지 '마오쩌둥'이 독재자로 평가받은 결정적인 사건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마오쩌둥은 '대약진 운동'이라는 중국 역사 상 희대의 병크라는 것을 실행하여 대략 3천 만명에서 5천 만명이 기근(영양실조)으로 사망했습니다. 또한 대약진 운동은 중국의 경제적 수준을 20년 이상 퇴보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하는데요.



'대약진 운동' 이후 '마오쩌둥'은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주석'자리에서 사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약진 운동' 이후 마오쩌둥의 권위는 나락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는데요. 하지만 '마오쩌둥'을 지지하는 젊은 공산주의자들과 마오쩌둥주의를 가진 젊은이들은 '마오쩌둥'의 복원을 열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마오쩌둥'에 반하는 자를 우파로 지정하고 그들을 숙청하기 시작하는데요. 또한 '마오쩌둥'은 '홍위병'들을 향해 "나는 젊은이들 잘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실드를 쳐주었다고 합니다. 이에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6개조를 발표하면서 '홍위병'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는데요. 당시 발표 된 16개조는 마오쩌둥이 '홍위병'을 향해 연설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오쩌둥의 전폭지원을 받은 '홍위병'들은 마오에게 반항하는 자들을 자본주의 우파인물이라고 규정하고 그들을 조리돌림하기 시작했는데요. 실제로 '문화대혁명' 당시 민간인 사상자가 수 백만이라고 알려졌지만 '문화대혁명'이후 수 천명으로 알려지면서 큰 파문을 낳았다고 합니다.



또한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 공산당 초기 멤버 일부가 '홍위병'들에게 붙잡혀 조리돌림을 당했고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총사령관 '덩샤오핑'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문화대혁명' 당시 군부대가 '홍위병'들에게 약탈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군부대 약탈 사건 이후 마오쩌둥은 이제 자신을 위협하는 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결국 '인민해방군'이 '홍위병'보다 위에 있다는 발언을 하면서 '홍위병'을 진압하기 시작했는데요. 군부가 '홍위병' 진압을 시작하면서 '문화대혁명'은 끝이 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오쩌둥은 중국을 건국한 건국의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지만 대약진 운동, 문화 대혁명으로 인해 수 천만 명이 희상당했기 때문에 독재자로 평가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조사하면서 사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세삼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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