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다면?
만약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이 아닌 백범 김구 선생이었다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김구 선생의 암살의 배후에는 백의사가 있다는 추측이 있다고 합니다.
반민특위의 정상적인 활동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하자 대한민국 국회는 의결수 과반 찬성으로 반민특위를 발동했습니다. 하지만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인해 해체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현재까지 대한민국은 일제의 식민지 중에서도 유일하게 민족반역자를 재판하지 못한 국가라고 합니다. 즉,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면 대한민국 역시 민족반역자들을 모두 재판에 회부했을 것입니다.
반공주의 사상가
백범 김구 선생은 민족주의자로 유명하지만 상해 임시정부 내부에서도 반공주의자로도 유명했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면 김구 세력으로 구분되는 임시정부 세력이 사회주의권 인사들을 숙청하는데 있어 확실하게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4.19 혁명의 미발생
4.19 혁명이 발생한 이유로 보자면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로 인해 벌어졌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권력에 욕심이 생겨 부정선거를 저지르게 되었는데요. 김구 선생이었다면 무리한 권력 욕심을 부려 부정선거라는 무리수는 던지지 않았을 것 같네요.
정치깡패의 미등장
이승만 박사의 오른팔이었던 이기붕은 정치깡패 이정재를 앞세우면서 야당 의원들을 압박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정치사에는 정치 깡패들을 빼놓을수가 없다고 하는데요.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정치는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할수도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
이승만 박사는 대체적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백범 김구 선생은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임시정부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당시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은 이승만 박사의 정통성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승만 박사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 가장 큰 이유가 미국과의 관계였다고 합니다.
국민이 인정한 민족지도자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이 사망하자 김구 선생의 장례식은 국민장으로 치루어졌습니다. 실제로 엄청난 인파가 김구 선생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하는데요. 대한민국 정부는 상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백범 김구 선생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장이자 민족의 지도자로 존경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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