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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5가지

똥베이런 2017.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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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이란 세계 해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하고 빛나는 승전으로 정유재란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해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령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5가지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선 수군의 군율과 신뢰의 리더쉽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 출전에 앞서 조선 수군들에게 조금이라고 군령을 어기면 즉각 군법으로 다스렸습니다. 당시 조선수군은 칠천량 해전으로 엄청난 손실을 보았기 때문에 조선수군 역시 필사적으로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인데요. 명량해전은 누가봐도 조선수군의 패배가 분명했고 심지어 이순신 장군 조차도 기적(천행)이라고 인정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다시 수군 총사령관으로 복귀한 것은 조선수군의 떨어진 사기를 다시 올리게 만든 이순신 장군에 대한 조선수군의 신뢰가 아닐까 하는 분석도 일부 존재한다고 합니다.



함선, 화기, 지리의 압도적 시너지


명량대첩이 일어난 울둘목은 해류가 바뀔 때 갈매기도 가라앉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물살이 상당히 거센 곳이었습니다. 일본 수군의 세키부네 100척이 지나갈 때 갑작스럽게 해류가 바뀐다면 대처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추측이 있는데요. 조선 수군 자체가 지리적으로 상당히 좋은 곳을 골라 일본군을 상대했다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피해를 받지 않는 일방적인 상황들


명량해전의 전황을 상세하게 기록한 오익창의 사호집이 있다고 합니다. 사호집에 의하면 이순신이 왜군과 싸울 때 솜이불 백여 채를 걷어다가 물에 담가 적신 뒤 12척 배에 걸어보았다고 합니다. 왜군의 조총이 그것을 뚫지 못했다고 한다고 하는데요. 조선은 고려말기에 이미 왜구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많기 때문에 배 자체를 박살내는 화포 전술이 많이 발달되어 있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최근에 연구한 결과로는 현대인의 생각보다 거리비가 축소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이 바다 위에서도 화포 때문에 고생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추측되고 있는 편이라고 합니다.



일본수군이 너무 방심했다?


일본 수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황당한 승리 그리고 조선 함대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자신감이 엄청났다고 합니다. 정유재란으로 일본에서 새로운 병력들까지 가세했으므로 이러한 자신감은 더욱 확고해졌다고 볼 수 있는데요. 명량해전 당시 일본군은 정공법으로 밀고 나가서 최단 거리인 울둘목을 돌파하는 것이 당시 일본수군에게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갑자기 해류가 바뀌면서 조선 수군 판옥선 12척이 한꺼번에 돌진하자 갑작스럽게 전황이 바뀐 것이라고 하는데요. 울돌목으로 진입하는 세키부네가 판옥선과 울둘목의 강력한 해류를 거스르지 못하고 진영이 붕괴되어 버린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울돌목의 좁은 지형과 물살


명량대첩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떠한 이유보다도 지형에 있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울둘목은 폭이 매우 좁아 이순신 장군 휘하의 십 수척의 판옥선으로도 일자진을 펼치면 완전히 틀어막는게 가능 할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일본 수군은 울둘목의 12개 암초가 있는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물살이 바뀌자 판옥선의 맷집을 바탕으로 사방 팔방에서 포격을 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하는데요. 일본 수군은 방향이 틀어진 물살을 정면에서 맞으며 통제가 되지 않는 상태로 판옥선이 쏘는 포탄을 두들겨 맞고 있으니 버틸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일부의 주장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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