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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일본군에게 사형을 선고한 전투

똥베이런 2017.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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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1592년 임진년에 왜인들이 쳐들어 온 난리라고 해서 임진왜란이라고 불리는 비극의 역사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일본군에게 사형을 선고한 전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조선군이 일본군에게 사형을 선고한 전투는 바로 조선 수군이 한산도 인근에서 조선 수군이 왜군을 박살 낸 '한산도 해전'입니다. 또한 한산도 해전은 조선 수군이 남해안 일대를 장악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만든 전투이기도 한데요.



실제 '한산도 해전' 당시의 기록을 보면 일본측 함선 73척 중 47척이 침몰하고 12척이 나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산도 해전' 당시 '조선 수군'의 '함선'은 단 한척도 침몰하거나 나포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한산도 해전' 이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마저 패전 소식을 듣자 '조선 수군'과의 전투는 웬만하면 피해라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해 일본군은 '한산도 대첩' 이후 절대로 바다에 나가서 '조선 수군'과 전투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한산도 해전' 이후 '남해안 일대'를 장악한 '조선 수군'은 일본에서 들어오는 '군수물자'를 포함한 '식량'을 모두 차단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 수군'은 임진왜란에서 열세를 보이던 조선측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는데요. 또한 '한산도 해전' 이후 일본 본국에서 물자가 도착하지 않자 일본군 일부는 굶어죽거나 영양 부족에 의한 역병에 시달리다 사망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태합기', '일본서기' 등에는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자신의 권력욕 때문에 스스로 무너진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산도 해전'은 임진왜란의 전세를 완전히 바꾼 전투라고 할 수 있는데요. 또한 '한산도 대첩'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 육군'이 '조선 수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의병과 조선 정규 육군이 조선 수군과 연합작전을 펼친 기록도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조선 수군을 생각하면 세계 해전사에서 미스테리로 남아 있는 '명량해전'만 생각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세계 해전사와 전쟁사에서 다루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한산도 해전'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게 사형을 선고한 전투로 평가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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