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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의 딸로 폐비가 될 뻔한 아내를 끝까지 지킨 세종대왕

똥베이런 2018.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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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창제한 조선의 4대 국왕인 '세종대왕'은 14살이 되던해에 소헌왕후와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역적의 딸로 폐비가 될 뻔한 아내를 끝까지 지킨 세종대왕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418년 세종대왕이 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뒤를 이어 국왕에 오를 때 세종대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물러난 태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소헌왕후의 아버지인 심온은 사약을 받고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소헌왕후의 아버지인 '심온'이 사약을 받고 사망하자 소헌왕후의 오빠들은 모두 귀양을 가게 되었고 어머니와 여동생들은 노비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태종 이방원'은 상왕으로 국왕의 자리에서 물려났지만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태종 이방원의 측근들이자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의 처형을 주도했던 박은 등은 소헌왕후를 폐비로 만들어야된다고 주장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세종은 자신의 아내인 소헌왕후를 끝까지 지켜냈고 태종 역시 며느리 소헌왕후를 끝까지 지켜냈다고 합니다.



실제로 소헌왕후는 태종이 나이가 들어 병이 들었을 때도 시아버지의 병간호를 도맡아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태종이 '심온'에게 사약을 내린 것은 왕권의 강화를 위해서였고 세종은 이러한 내막을 알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아내인 소헌왕후에게 감사의 뜻을 보이면서 그녀를 끝까지 지켜냈다고 합니다.



실제 소헌왕후가 병에 들어 건강이 나빠졌을 당시에도 세종은 조선의 모든 사찰에 소헌왕후의 건강이 완치될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리도록 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도 아내인 소헌왕후의 묘와 자신의 묘를 같은 곳에 만들라고 명했고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는 아직까지도 함께 나란히 묻혀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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