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한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처절하게 싸운 미군 5명
1950년 6월 25일 한반도 전역에는 남쪽으로 피난가는 피난민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은 한국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파병했고 미군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의 통과로 미 본토의 병력을 한국으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처절하게 싸운 미군 5명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찰스 H. 바커
찰스 H. 파커는 1953년 6월 4일 전사한 인물로 전쟁 발발 이후 소대원들과 함께 정찰 중이었던 그는 북한군의 참호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북한군과 마주친 바커의 소대원들은 탄약이 다 떨어질 때까지 분전했고 상황이 좋지 않자 소대원들을 모두 후퇴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찰스 H. 바커는 홀로 북한군과 끝까지 싸웠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C. 벤폴드
에드워드 C. 벤폴드는 1952년 9월 5일 전사했으며 벤폴드의 전우였던 참전용사들은 그를 전우애가 강한 군인이었다고 회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벤폴드는 제122고지의 전투 당시 부상을 입은 동료 해병을 보았다고 합니다. 벤폴드는 제122고지에서 부상당한 두 해병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고 적에게 노출되어 전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멜빈 L. 브라운
멜빈 L. 브라운은 1950년 9월 5일 전사했으며 1950년 9월 경상북도 대구의 755고지 방어전에 참전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분대가 쓸 탄약과 포탄을 보급하는 임무를 담당했다고 하는데요. 끊임없이 몰려드는 적군을 상대 할 포탄과 탄약이 부족하자 멜빈 브라운은 홀로 야전삽으로 적들을 상대하며 분전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결국 멜빈 브라운은 19세의 나이로 치열하게 싸우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넬슨 V. 브리튼
넬슨 V. 브리튼은 1951년 3월 7일에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전쟁터에서 수류탄에 의해 살점이 떨어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치료를 거부한 넬슨 V. 브리튼은 전우들이 있는 전쟁터로 다시 나갔고 수류탄으로 적의 진지를 폭파시키며 돌격했다고 합니다. 돌격 도중 탄알이 다 떨어져 총이 나가지 않자 착검한 상태로 개머리판과 단검으로 적을 사살해나갔다고 합니다. 그는 결국 적의 중화기 진지를 격파하고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고 합니다.
를로이드 L. 버크
를로이드 L. 버크 중위는 경기도 연천 전선의 200고지 전투에 참여해 미군 내에서도 전설로 통하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버크 중위는 200고지 전투에서 혼혈단신으로 박격포 진지 2개를 폭파시킨 후 3개의 기관포 진지를 격파했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버크 중위는 적의 진지를 격파하는 동안 100명이 넘는 적을 사살했다고 합니다. 버크 중위는 한국전쟁 휴전 체결 이후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갔으며 1999년 1월 1일 새해가 밝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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