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중국군이 단 한 명도 살아 돌아가지 못한 전투

똥베이런 2018.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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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중국 공산당은 '제2차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후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신 중국'을 선포한 후 타이완 섬으로 도망간 장제스 잔당을 소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마오쩌둥의 지시 아래 중국군은 타이완 섬을 점령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군대를 동원했는데요. 중국군이 단 한 명도 살아 돌아가지 못한 전투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49년 중국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배한 장제스는 타이완 섬을 보호하기 위해 최후의 보루로 금문도를 선택했습니다. 



마오쩌둥은 타이완 섬으로 도망간 장제스 일당을 소탕하기 위해 대만 점령을 지시했다고 하는데요. 마오쩌둥은 당시 중국 본토에서 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금문도는 금방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2만 병력을 동원 시켰다고 합니다.



1949년 10월 24일 야간을 틈타 중국 공산당군은 공격을 시작했고 상륙정이나 전함이 없었기 때문에 근처 해안가에 정박해 있는 어선을 징발했다고 합니다.



어선 징발이 끝나자 선발대로 1만 병력을 태운 어선 수 백척이 금문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머지 1만은 후발 병력으로 투입시키로 했다고 합니다. 



금문도를 점령하기 위해 금문도에 상륙한 선발대 1만은 상륙 교두보를 확보했지만 금문도에 상륙한 중국 공산당군 1만은 헬 게이트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금문도에 1만 중국 공산당군이 상륙하자 중국 국민당군 4만 병력은 중국 공산당군을 기다리고 있었고 중국 국민당군은 전차까지 앞세워 중국 공산당군을 향해 돌격했다고 합니다. 또한 중국 공산당군 1만의 선발대를 상륙시킨 후 나머지 1만을 태우러 가는 어선들 역시 중국 국민당 해군과 공군에게 전멸당했다고 하는데요.



후발대로 금문도에 상륙하기로 한 중국 공산당군 1만은 중국 국민당군 4만 병력에 몰살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상륙에 필요한 어선 역시 전멸 당해 금문도로 들어 갈 수 조차도 없었다고 하는데요.



금문도에 선발대로 들어간 중국 공산당군 1만 명은 그대로 전멸했고 중국 공산당군 3천 명이 사망했고 7천 명은 포로로 잡혔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오쩌둥은 병력을 동원해 대만과 금문도를 점령하려 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해 금문도 점령은 포기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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