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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18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최고의 해전 TOP5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 수군이 벌인 해전에서도 상당히 높게 평가하는 해전들이 있는데요. 임진왜란 당시에 일어난 해전 중 최고의 해전 5가지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명량해전 칠천량 해전 이후 울둘목의 지형을 이용하여 조선 수군의 함대가 왜선을 격파한 최고의 해전입니다.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승리한 이유에 대해서 아직도 의문점이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노량해전 왜국 본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본국으로 철수하는 왜군을 상대로 조,명 연합 함대가 벌인 해상전투입니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순신 장군은 민족의 복수를 위해 노량으로 출전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산도 대첩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한산도 대첩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육지에서 사.. 밀리터리 2017. 12. 18.
명나라 장군이 인정한 임진왜란 당시 조선측 최고의 장군 4인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명나라 장수 마귀는 조선에서 최고의 장군 4인을 꼽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릴 만큼 명나라의 장수 마귀는 명나라에서도 입지가 높은 장군이었다고 합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이순신 장군은 한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로 한산 대첩으로 조선 반격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부산진 해전이후 조선 수군은 남해안을 통제해버리면서 왜군의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해버렸는데요. 이순신 장군은 명나라에서 파견되어 온 모든 장수들에게 극찬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명나라 황제 만력제는 이순신 장군을 명나라 수군 도독이라는 명나라 품계 정1품의 도독직을 수여했다고 합니다. 감사군 대장 정기룡 정기룡 장군은 조선의 조자룡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명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0대의 젊은.. 밀리터리 2017. 12. 16.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명나라를 능멸한 인물의 최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황제를 능멸한 인물은 중국 명나라 말기의 무장 '심유경'이라는 인물입니다. '심유경'은 임진왜란 발발 이후 명나라 군대와 함께 조선으로 파병된 인물인데요. '심유경'은 한국인들에게도 임진왜란 당시 '강화협상'을 진행한 인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심유경'이라는 임진왜란 당시의 인물의 최후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명군의 참전과 조선의 대기근으로 인해 곤욕을 치루고 있었던 일본은 명나라측에 휴전협상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측의 휴전협상을 승인한 이는 바로 '심유경'이라는 인물이었는데요. 심유경은 '고니시 유키나가'와의 휴전협상을 진행하면서 1593년에는 직접 일본까지 건너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 그의 요구사항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밀리터리 2017. 12. 15.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도 절대로 이길 수 없었던 상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은 이순신 장군과 수군 지휘관들의 지휘 아래 전설을 기록한 군사조직입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 역시도 절대로 이길 수 없었던 상대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절대로 이길 수 없었던 상대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와 일본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강화협정을 진행하는 동안 전쟁은 소강상태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조선 수군은 처참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역병'이라고 불리는 전염병이 조선 수군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강화협정이 진행되는 휴전상태 동안 전염병, 기근으로 보급과 병력 유지에 큰 치명타를 입혔다고 합니다. 또한 전염병으로 인해 조선 수군의 병졸은 수 천명이 떼죽음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 밀리터리 2017. 12. 14.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왜 일본을 보복하지 않았을까? 임진왜란은 1592년 일본의 침공에 의해 조선 한반도에서 발생한 대규모 전쟁입니다. 그런데 조선은 임진왜란에서 승리했지만 왜 일본을 보복하지 않았을까요? 조선이 임진왜란 이후 일본을 보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조선 한반도에서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은 본국으로 철수를 명령받고 철수를 하게 되었는데요. 또한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인해 일본 열도는 권력에 의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것은 에도막부 수립 과정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이시다 미츠나리'의 전쟁이었는데요. 당시 일본은 침략전쟁으로 인해 국력을 상당히 소모한 상태였고 조선 침략에 동원된 병력 대부분 역.. 밀리터리 2017.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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