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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154

미 해군 3개 항공전단이 북한을 초토화 시켜버릴 수 있는 이유 항공모함은 바다에 떠다니는 군사기지라고 불릴 정도로 강대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항공모함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이지스함과 잠수함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항공모함을 포함하여 항공모함을 보호하는 잠수함, 이지스함을 포함하여 이를 항공모함 전단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미 해군 항공모함 전단 3개가 북한 전역을 초토화시켜버릴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미 해군 항공모함 전단에 포함되어 있으면서 항공모함을 보호하는 미 해군의 이지스함은 대략 4척에서 5척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또한 적이 잠수함을 이용하여 항공모함을 침몰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항상 항공모함 전단에는 핵 추진 잠수함 3척이 따라다닌다고 합니다. 이렇게 배치 된 항공모함을 보호하는 이지스함과 핵 추.. 밀리터리 2017. 12. 10.
'명량해전'을 1척 vs 133척의 전투라고 봐야하는 이유 이순신 장군이 쓴 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이 적을 막아서면 전투를 진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와 조선왕조실록, 징비록에 기록되어 있는 명량해전을 1 vs 133의 전투라고 봐야하는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징비록의 기록에 의하면 명량해전 진행 초기 이순신 장군이 탑승한 대장선이 적선의 이동로를 막아서며 전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은 울둘목의 소용돌이를 이용하여 왜선을 하나 둘 씩 격침시키기 시작했는데요. 또한 판옥선은 선체 자체가 워낙 튼튼하게 제작되었기 때문에 지형을 이용하여 왜선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징비록에 의하면 명량해전 당시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11척의 판옥선은 뒤.. 밀리터리 2017. 12. 9.
중국군이 북한에 주둔하고 있지 않은 이유 한국전쟁 이후 중국과 북한은 혈맹조약을 통해 동맹을 맺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 정권이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중국의 존재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한반도에 미군은 주둔하는데 중국군은 주둔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압록강 인근까지 진군한 연합군을 피해 중국으로 도주한 김일성은 중국 마오쩌둥을 만나 병력 파병을 요청했습니다. 또한 중국은 미국과의 국경을 맞대야한다는 부담감과 자본주의의 중국 유입의 문제로 참전을 결심하고 병력을 파병하기에 이르는데요. 결국 중공군이 참전 한 후 연합군은 후퇴하기 시작했고 휴전협정을 통해 현재의 한반도 정세를 만들어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중국은 사실 주한미군이 남한에 주둔한다는 핑계로 중공군을 북한에 영구 주둔시킬 계획이었다.. 밀리터리 2017. 12. 9.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일본군에게 사형을 선고한 전투 임진왜란은 1592년 임진년에 왜인들이 쳐들어 온 난리라고 해서 임진왜란이라고 불리는 비극의 역사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일본군에게 사형을 선고한 전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조선군이 일본군에게 사형을 선고한 전투는 바로 조선 수군이 한산도 인근에서 조선 수군이 왜군을 박살 낸 '한산도 해전'입니다. 또한 한산도 해전은 조선 수군이 남해안 일대를 장악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만든 전투이기도 한데요. 실제 '한산도 해전' 당시의 기록을 보면 일본측 함선 73척 중 47척이 침몰하고 12척이 나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산도 해전' 당시 '조선 수군'의 '함선'은 단 한척도 침몰하거나 나포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한산도 해전' 이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마저 패전 소식을 듣자 '조선.. 밀리터리 2017. 12. 9.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5가지 명량대첩이란 세계 해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하고 빛나는 승전으로 정유재란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해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령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5가지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선 수군의 군율과 신뢰의 리더쉽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 출전에 앞서 조선 수군들에게 조금이라고 군령을 어기면 즉각 군법으로 다스렸습니다. 당시 조선수군은 칠천량 해전으로 엄청난 손실을 보았기 때문에 조선수군 역시 필사적으로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인데요. 명량해전은 누가봐도 조선수군의 패배가 분명했고 심지어 이순신 장군 조차도 기적(천행)이라고 인정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다시 수군 총사령관으로 복귀한 것은 조선수군의 떨어진 사기를 다시 올리게 만든 이.. 밀리터리 2017.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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